주력으로 쓰는 향수가 대략 10개 내외인데도 매일 뿌리면 지겨운 때가 온다. 그래서 지난 스코틀랜드 학회 때 사온 펜할리곤스의 할페티와 레이디 블랑쉬를 얼마전 뜯었다. 나는 달달한 꽃향수와 상극이고 백화점 1층에서 나는 특유의 파우더리한 냄새를 싫어한다. 그런데 또 샤넬 코코를 좋아하고 달콤하고 은은한 바닐라 잔향을 좋아한다(반드시 은은해야 한다). 복잡하게 땅에 풀에 파묻혀도 나는 꽃향 같으면서 바디오일처럼 스민 폭닥한 느낌이 있어 벽난로 옆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좋아하는 것 같다. 최애 하우스는 겔랑. 그리고 다소 얼토당토 안하게 느껴지면서 마지막은 비슷하게 끝나는 펜할리곤스 특유의 조향도 좋아한다. 문제는 이 하우스. 비싼 것도 문제지만 자꾸 단종시켜서 소중할수록 아껴쓰고 싶게 한다.

할페티는 얼핏은 겔랑 샬리마와 삼사라를 섞어놓은 것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러나 내가 갖고 있는 향수 어디에서도 나지 않는 넛맥과 큐민의 향이 있다. 향신료를 좋아하는 나한테는 완전 즐거운 시간이다. 매장에서 구매 당시 이 하우스의 가장 복잡한 향들을 시향하고 싶다고 요청했고 대략 서른 가지 시향끝에 가장 마음에 들어서 사온 아이다. 다소 시대를 읽을 수 없는 느낌으로 잘 차려입은 날 찰떡으로 입을 것 같은 느낌이다. 지속력도 나쁘지 않고 발향도 좋고 내 기준에는 워낙 개성이 있고 독보적이라 펜할리곤스를 대표하는 향이라고 생각한다.

레이디 블랑쉬는 좋지만 짧다. 체온이 높은 편인 내가 피하는 밝은 느낌이 첫인상인 향수다. 매장에서 시향하고 내려 놓았고 출국 직전에 공항에서 결국 사들고 들어온 향수. 마음 바꿔 데려온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꽃인 히아신스 향이어서였던 것 같다. 단 꽃향을 꺼리지만 그리너리한 것들을 듬뿍 넣어 기운을 나게 하는 느낌이 있다. 때로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향을 생략하거나 가벼운 향으로만 마무리하고 싶은 날이 있는데 내게는 그런 라인업이 없다. 이 향은 가볍게 채도가 낮은 아름다운 꽃다발을 받고 기분 좋은 느낌이다. 미츠코랑 레이어링 해볼까 이런 생각도 드는. 지속력이 짧다보니 들고 다니면서 뿌리고 싶은데 무겁고 병이 너무 아티해서 힘들다. 공병에 담겠다고 머리(?) 뜯기도 싫어서 다이소 공병 같은데 다섯 퍼프 정도 덜어서 다니려고 한다. 가볍고 꽃내음 나면 난 일단 거르고 보는데 꽃향인데 묘하게 다른 질감이 많은 향이다. 향수 싫어하는 분 만날때 가벼운 마음으로 손이 갈 향수다. 가벼운 라인업을 늘려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