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대략 15년정도 사회 생활을 했는데 그 기간 동안 크게 몸이 변하지 않아서 내 옷장은 버리지 않으면 나갈 일 없는 것들이 꽤 있는 편이다. 대학교 때 들었던 톰보이 가죽 가방도 아직 있고 인턴 때 스위스 여행 가서 사온 베낭부터 여행지에서 산 옷과 악세서리들이 꽤 많이 잔존하고 있다. 땀도 잘 안 흘리는 편이라 뭘 흘리지 않거나 잃어버리지 않으면 브랜드를 떠나 오래 입는데 문제가 참 없다.
그런 내가 은퇴를 20여년 앞두고 내 옷장을 보면서, 줄이고 정예 멤버를 남기고 가능하면 다시 살 일 없이 쭈욱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것들로 잘 채워 넣자 싶었다. 쇼핑 예산은 일년에 연봉의 5%로 제한하고 하나 하나 신중이 들이고 들일 때는 두개 정도 비워낼 생각을 하자 결심 했다.
일할 때 입는 바지를 제외하고는 계절별로 한두개만 있어도 좋겠다 싶은 건 청바지를 입고 근무하기 시작하면서다. 지난 도쿄 여행 때 사온 아나토미카 마릴린 원(27)은 흑색인 덕에 작년 출근 1/3을 책임졌고 더 예뻐졌다. 엄마가 생일 선물로 사준 1954 501XX(28)는 약간은 핏 된 바지를 입고 싶은 날 즐겨 입고 있다. 글래스고 학회 가서 사온 MIE 마틴 1461과 함께 하면 딱 일하는 맛이 난다. 그렇게 바지 두벌로 한여름을 제외하고 다 해결이 되다 보니 바지가 많을 이유가 없구나 싶어졌다.

올해 초가 되면서 내 스스로 고삐 풀린 망아지던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연초부터 레드윙 엔지니어 부츠를 구매한 사건이 시작이다. 남자들 거라 생각했던 부츠이고 이미 지미추 브루클린 부츠를 갖고 있기에 안 들일거라 생각했는데 왠걸, 너무 추운 날씨에 이만한게 없었고 나는 왜 이 나이에 이 재미를 알았을까 싶었다. 하나로 끝내지 못하고 목토 에빌린도 또 추가했다. 그랬더니 룩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커져서, 운동화를 6-7개 비워도 되겠다 싶어졌고 룩 전환이 되면서 갑자기 쇼핑 망아지가 되었다. 캐피탈 모직 피코트는 절개선이 너무 아름다웠고 갖고 있는 마쥬 자켓 등을 바라 보는 내 시선을 바꿔버렸다. 무통은 왜 입는건가 헸는데 아크테릭스 패딩이 필요한가 싶은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젬스 바지, 코트를 바라보는 내 시선도 너무 많이 바뀌었다. 우리 둘은 지난 한달여 고삐 풀린 쇼핑 망아지들처럼 매력적인 브랜드를 경험하고 있다. 5% 예산 목표는 지켜질 수 있을까? 경험상, 목표는 지켜질 때 더 큰 만족감을 준다. 있는 것들이 언젠가 떠나갈 수 있으니 연초에 산 것들로 부지런히 이 추위를 즐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