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 읽고(인생의 의미, 책 읽는 삶,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일년 중 한달이 흘렀다. 지난 한달 도서관을 다니며 책을 골라본다. 토마스 실란드 에릭센이 쓴 인생의 의미를 읽었다. 읽을때는 ‘그러네.’ 하면서 읽었던 책이 시간을 두고 생각날 때가 종종 있다. 올해로 마흔 다섯살이다. 여생이 얼마 남은지 알 수 없으나 반절은 대략 살았을 거다. 은퇴는 20여년 남았다. 자본력과 건강에 대한 컨텐츠는 범람한다. ‘인생의 의미’는 세상이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말들 너머의 내 생각을 하게 했다. 속도를 늦추는 것과 실을 끊기. 대한민국 교육과 내 젊음과 이어진 긴 종합병원 생활은 내가 빠르고 정열적으로 일하는 자세를 미덕으로 삼고 살게 했다. 그런데 훈련의 결과는 끝끝내 스며 있을테니, 태도를 신경쓸 때란 생각을 요즈음에 한다. 늦추려고 한다. 운전도, 청진도, 말도. 무능해보이지 않는 선까지 최대한 늦춰보려고 한다. 끝에는 태도가 되어 어느 정도는 바뀌길 바란다. 실 끊기와 관계 그리고 결핍. 책 ‘인생의 의미’ 중 소챕터를 구성하고 있던 단어들이다. 결핍을 사랑하고 실 끊기를 받아들이는 것. 그런 마음으로 생을 바라본다면 관계에 대한 내 마음에도 여유가 커질 것 같다.
CS 루이스의 책 읽는 삶을 읽었다. 여러 책을 동시에 읽다보니 지적 우월감을 뽐내는 어투가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다. 어려운 일이다. 내가 남보다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할 때 스스로 진심으로 겸손하기가. 나를 돌아볼 때 가장 문제되는 부분도 이 대목이고 진심으로 어떻게든 노력하고 싶은 부분이다. 많이 알고 알수록 겸손해지는 법이라는데 평생 많이 안다고만 생각하고 사니 아직 많이 알지 못하나보다 한다. 글 중, ‘원문을 읽으라’는 부분이 참으로 공감이 되었다. 요즘은 AI가 요약해주고 머리를 식히면서 보는 영상 컨텐츠는 ‘핵심만!’으로 가득차버렸다. 원문을 읽고 이야기의 시작을 알고 싶어하는 건 보이는 것 너머의 생각을 스스로 하게함으로써 통찰력을 갖게 한다.

요즘은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읽고 있다. 아직 끝내지 않았지만 한장만 읽어도 따뜻하고 마음이 풍성해지는 느낌이 든다. 아무리 그래도 내내 좋을 수 없는 법. 절반을 지나면서 뒤를 알고 싶지 않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문학 전집이란 시리즈가 지금의 나이가 되어서야 매력이 있다. 빈티지가 대유행인 이 시대에 문장의 빈티지스러움. 아무도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는 현대에 고전을 읽는 것이 즐겁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이렇게 핫해질 줄 알았던가.
쇼핑도 하고(처치스, JM Weston)
나는 첼시로퍼가 뭔지도 모르고 굿이어웰트 구두가 뭔지도 모르고 반생을 살았다. 바이크 러버인 젬스 따라 RRL 덱자켓을 사고 레드윙을 신기 시작하면서 ‘경년변화’란 단어를 처음 접했다. 이게 생의 어떤 주기에 와닿게 되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의 내게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커리어가 15년이 지났고 정년을 20년 남기고 있다. 내 인생을 놓고 아마도 경제 활동이 정점일 지금 시기에 잘 사놓은 것들은 평생 함께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부터 진지하게 태도가 바뀌었다. 옷장을 자식 키우는 마음으로 키우고 공간을 간결하면서도 좋은 질감으로 마무리하고 싶어졌다. 운동화로 가득찬 실용성을 뒤로 하고, 좋은 곳에 오래 신고 다닌 로퍼를 잘 가진 나이든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처음 만난 게 처치스 펨브리 유광 로퍼다.

로퍼 하나를 신발장에 넣고는 오래 오래 찾아보았다. 갈색 로퍼는 뭐가 없을까. 덕분에 온갖 룩북들을 찾고 럭셔리 브랜드 사이트들을 찾았다. 그렇게 머리속에 구두 이미지가 가득가득 한 상태가 되었다. 어제 휴가를 보내며 남자 구두 편집샵 팔러를 방문했다. 젬스를 따라 나선거였다. 젬스가 알든에 대해 직원분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는 아무도 내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남자 구두 편집샵에 따라온 여자이겠거니. 혼자인 시간에 구경해본 남자 구두들. 여자 복식 문화와 다를 수 밖에 없는 역사를 갖고 있는 남자 복식 형태다. 현대로 와서 누구도 전쟁하지 않고 같이 노동하고 사는데 굳이 형태가 크게 다를 필요가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옷도 신발도. 광범위하게는 주얼리도 핸드백도 스카프도 목도리도, 심지어 양말도 젠더리스 할 수 있다. 취향에 따라서.
룩에 마감은 구두이고 룩의 느낌은 자세이고 룩의 완성은 태도라고 생각한다. 많은 룩 마감에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dark brown 로퍼를 찾았다. 가죽의 결은 물론 레이스와 착화감이 좋은 비누마냥 좋다. 팔러 홈페이지에 내가 신고 있는 모습이 예시 사진으로 올라왔다. 인스타그램 피드에도 올라왔다. 남자 매장이고 옥스퍼드 슈즈다보니 size 6으로 샀는데 집에서 JM weston 홈페이지 들어가서 페니로퍼에 내 스펙을 입력해보니 여자 5.5B를 권한다. 다음에 이 브랜드 내에서 고민하고 싶은건 180 여성 올리브 스웨이드 첼시, 브라운 첼시, 블랙 애프론 더비.

발레도 하고
손가락 골절로부터 7주차에 해방되었다. 다시 발레를 가고 있다. 흐르는 음악에 천천히 하는 동작들, 빨라도 길게 떨어지는 선들이 좋다. 플로어가 여백이 많으면 음악 틀어놓고 혼자서 이런 저런 몸짓을 할 수 있을만큼 밸런스가 좋아진 게 느껴진다. 사무직은 목에서 견갑골로 흘러가는 곳의 라인이 예쁘기가 어렵다. 나는 특히 근육이 없어서 자세를 엉망으로 산 시간이 너무 길어서 자세에 유독 자신이 없다. 남은 반생 내내 할수는 없겠지만 가능하면 집에서도 조금씩 하는 습관을 들이고 싶다.

날이 풀리면 바이크 면허도 따러 가야겠고 그림도 그리고 싶은 것들이 꽤 늘어만 가고 있는데 상반기에는 어떻게든 끝내야 하는 논문이 세 개다. 본업의 흐름을 헤치지 않기 위해서 책상에 앉는 시간을 늘여가려고 한다. 집에 있던 오래된 Klipsch 블루투스 스피커를 켜서 pc에 연결했다. 마일스 데이비스 플레이리스트를 켰다. 작은 공간에 뭉치는 느낌이 드는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만의 매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