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박 2일 짧게 대구; 딥커피, 잠석레스토랑, 빈티지옷가게, 제일콩국, 롤러커피

여행 아닌 대구 여행기다. 부모님을 뵈러 오랜만에 내려갔다. 명절에는 잘 안 가서 딱 일 년 만인 것 같다. 젬스랑 같이 간 거는 더 오랜만이기도 한데 이번엔 애초에 나만 부모님 댁에 들르고 젬스랑은 그 외 시간 따로 작은 여행을 해보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더 좋았다.

모두가 함께 한 대구, 어디에 가야 밥을 먹나요?

제냐가 노견이 되면서 손이 많이 가면서 온 가족이 출동하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셋이 총출동하는 장거리 여행은 오랜만이다. 제냐를 데려가서 마땅하게 식사할 수 있는 곳이 없다. 날씨도 좋고 맛집도 많은데 애견 동반이 되는 식당이 없는 건 참 아쉽다. 집에서 같이 자기도 하는 반려 동물이고 강아지와 사람간 옮기는 전염병은 참 없는데도 이렇게 답답하게 사는 것도 우리 문화다. 어쨌든 이런 우리나라 행정 영향권에서 평생을 보낸 제냐는 늘 그렇듯 캐리어에 쑥쑥 잘 들어갔다. 고속도로 휴게소도 강아지 실내 출입이 안되니 쭈욱 달렸다. 그나마 카페류들은 가능한 곳이 늘어나 있는 형편이라 앞산 카페거리에 들러 자그마한 빵집에서 제냐와 같이 첫 식사를 했다. 날이 따뜻하고 길가 가로수라 푸르른 화창한 날이었다.

딥커피 로스터스, 유즈드박스, 페파스토어

젬스 체크인 할 목적으로 동성로 쪽으로 이동을 했다. 주차를 하고 봉산 문화 거리를 걸어 보기로 했다. 봉산동에는 내가 좋아하는 딥커피 로스터스 본점이 있다. 오랜만에 달달하고 크리미한 에스프레스를 맛봤다. 아라비카 원두향이 신선하면서도 밸런스 잘 잡힌 우리식 에스프레소라 생각해본다. 부드럽다. 젬스가 묵을 호텔 쪽으로 이동하기 위해 반월당역에서 중앙로역 방향을 향해 걸었다. 빈티지 열풍에 작은 골목에는 꽤 큰 규모의 빈티지 샵들이 들어와 있었는데 구경하는 재미가 좋았다. 관광에서 소외된 편인 대구는 물가가 참 쌌다. 빵도 커피도 심지어 옷도 저렴해서 일본 보다 싼 느낌?! 아무 정보 없이 다니다가 우연히 들어간 페파스토어. 마음에 든 빈티지 롱 스커트는 빔스보이 것이었는데 4만 2000원이었다. 대구 날씨가 생각보다 너무 더워서 최근 입지도 않던 가장 얇은 옷을 입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더웠기에 그 핑계로 스커트를 선물 받았다. 제냐에게 너무 친절해서 감사했던 유즈드박스에서는 모자를 샀다. 장비 완충 후 다시 걷기. 동성로에는 축제 기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정말 많았다. 사람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종업원들의 말투도 이국적이라고 해야 하나. 여행 온 느낌이 확 나던 동성로였다. 온누리 상품권으로 반스 신발 하나 사고는 같이 수박 주스와 멜론 주스를 엑스 라지로 사서는 머리끝까지 송골해지는 기분으로 시원하게 들이켰다.

첫끼니를 함께 하며
Flickr, Photo album of Daegu 2025 (18 photos)

잠석레스토랑, 수성못 수퍼차저, 시칠리안 파스타바


피곤해지기 시작할 제냐를 대구 집에 두고는 다시 나섰다. 상인동 잠석 레스토랑에 들렀다. 제임스의 지인이 운영하는 집인데 입구에 서 있는 헌터 커브, 작은 가든과 실내를 채우고 있는 개성 있는 일러스트레이션까지 묘하게 우리와 평행이론인 집이었다. 개성 있는 레시피와 메뉴가 있어 흥미로웠고 맛도 있었다. 부모님께 미리 말씀 안 드리고 대구에 깜짝쇼로 급히 내려온 터라 그들은 여전히 부산에 있었기에 수차로 향했다. 대구는 슈퍼차저가 조금 외곽에 있는 편이라 이 핑계로 수성못에도 잠시 들렀다. 편의점에서 와인 한 병 사 들고 시칠리아 파스타 바로 이동했고 마침내 모두 모였다. 이탈리아 여행은 기괴할 정도로 최근 외식에 대한 만족도를 떨어뜨렸다. 이번 파스타 바도 괜찮긴 했지만 정취랄까.. 그런 찐 그리운 요인들이 우리나라에는 없으니 특히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대한 만족도는 전체적으로 너무 떨어진다. 어쨌든 식사를 잘 마치고 집으로 이동했다.

어느덧 30년이 흐른 아파트와 앞산

창밖으로 앞산의 아카시아 꽃이 물결을 친다. 부모님 선물로 사온 폴스미스 의류들을 오픈하고 어린이날을 맞이한 조카들의 장난감도 오픈하고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저녁을 마무리했다. 제냐는 최근 볼 수 없었던 조증 상태로 저녁 열한시까지 놀았다. 저녁에 제냐를 데리고 동네 산책을 나섰는데 혼차 미도다방과 관람차 관광을 마친 젬스로 부터 문자가 왔다. “자기야. 호텔을 18일로 예약했다는데” 맙소사, 호텔 예약을 잘못한 것이다. 대구 동성로 일대는 만실에 모두 예약 마감이었고 시간도 저녁 9시를 넘기고 있어 예약할 곳은 매우 요원했다. 집으로 오라 하기도 난감하여 브라운 도트 봉덕점에 전화를 해서 사정을 한 결과 방 하나를 받아낼 수 있었다. 어쨌든 젬스는 우려곡절 끝에 생각보다 괜찮은 방에서 하루 잘 잤고 나는 반대로 잠자리가 바뀐 데다 너무 밝아서 밤새 잠을 뒤척였다.

제일콩국, 롤러커피

다음날 아침 가족끼리 식사를 하고 인사를 나눴다. 떠나기 전 젬스와 같이 제일 콩국에서 궁금했던 식사를 했다. 오~ 맛있다!! 오랜만에 대구에 내려가 보니 첫째, 수목의 울창함이 윗지방의 그것과 너무 달라 앞선 계절감이 있고 둘째, 다른 나무에 다른 사람들과 고유의 메뉴까지. 남부 지방 바이브가 섞여 꽤 좋았다. 셋째, 시내가 자그마해서 밀도에 비해서 이동하는 시간이 줄어드니 여행자에게는 참으로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있던 유명했던 집이 꽤 많이 그대로 있고 새로운 것들이 늘어나 동성로에서 남산 그리고 대명동까지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라 남구의 터를 잡고 있는 나로서는 굉장히 즐거운 도시 여행이었다. 뜻밖에도.

동성로 쇼핑·대구 가챠샵·로컬 맛집까지! 대구 여행 브이로그 1박 2일

에필로그

올라오는 길에 날이 흐려졌다. 근대 문화골목에서 계산성당 앞 벤치에 제냐를 올려놓고 사진을 찍어주는데 제냐가 언제 또 여기 올까? 하는 마음이 들어 떠나기 섭섭했던 내 마음을 제임스는 잘 몰라 줬다. 그는 목적이 있으면 항상 빨리~~ 손실 없이 가야 한다. 반면에 나는 상대적으로 뭔가 서둘러 끝내야 하는 상황에 자주 놓인다. 올라와서 생각해보니 제냐와 여행을 1박 더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지겨울 때까지 머무르지 못한 나로서는 살짝 아쉬운 마음으로 연휴가 끝이 났다.

Similar Posts

  • |

    [속초~고성] 브롬톤과 강아지와 1박 2일

    숙박은 에어비앤비로 대체 공휴일이 주어진 주말에 우리 강아지와 함께 숙박할 수 있는 속초 숙소를 에어비앤비로 예약했다. 강아지와 함께 머물 수 있는 곳을 찾다보면 별 선택 사항이 없고 그래서 큰 기대는 안하고 갔는데 생각보다 머물기 좋았다. 특히 속초해수욕장에 위치해서 근처에서 식사는 물론 인근에서 술 한잔 하기도 좋았다. 속초~고성 여행은 아야진 해수욕장에서 시작 속초를 몇번 갔지만 늘…

  • |

    춘천 라이딩 (feat. 브롬톤, 맛집, 의암호)

    어느날 젬스가 혼자 브롬톤을 타고 춘천 라이딩 다녀온 후 너~~~무 좋다.를 연발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 어느날 이후에도 35도를 넘나드는 한여름만 지속되었다는 거다. 처음 같이 춘천 라이딩 간 날 한시경 늦은 점심을 춘천 누벨퀴진에서 먹고 두시가 지나서 라이딩을 시작했는데 어마어마한 햇살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탔다. 비타민 D가 먹어서 생기는 건지 광합성으로 생기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광합성으로…

  • |

    영주 부석사의 가을, 단풍 여행의 백미

    무려 유네스코 헤리티지 중 하나인 영주 부석사는 수도권을 기준으로는 접근이 쉬운 편은 아니다. 때문에 여지껏 한번도 방문을 못했다. 올해 가을은 강원도로 이사 온지 어느덧 4년차. 단풍이 아름다운 곳은 너무나 많은 반면 절정은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에 방문할 곳들을 고민하여 결정하고 있다. 다행히 10월 한파로 단풍이 이상하리만큼 늦게 찾아온 덕에 아직도 끝나지 않은 단풍을 즐기고 있는 것은…

  • |

    일본 9월 6박 7일; 홋카이도, 삿포로, 오타루, 노보리베츠, 도야호수

    추석 연휴에 홋카이도에 휴가를 다녀왔다. 티케팅때도 예상하지 못했는데 우리나라 추석이 너무 더웠던 터에 뜻하지 않게 피서가 된 휴가였다. 여정 홋카이도는 처음이다. 규모가 크기 때문에 욕심 내기 보다는 휴가에 적절한 수준으로 이동거리를 짧게 잡았다. 삿포로 2박-오타루 1박-노보리베츠 1박-도야 1박-삿포로 1박. 이렇게 6박 7일을 계획했다. 호텔 늘 아고다로 예약하는 편이다. 스스키노 그랑벨에서 2박을 했는데 큰 방이라고 예약했는데도…

  • |

    고궁의 단풍

    미세먼지는 가득했지만 남산 앞으로 펼쳐지는 은행빛이 찬란했고 서울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고궁의 단풍은 고왔다. 단풍 다음은 낙엽이니 지금 내 나이가 궁에서 사진 찍으면 썩 잘 어울리면서도 덜 슬퍼보이는 때가 아닐까. 창덕궁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겠지만 매 해 나는 조금은 달라지는 모습이겠구나. 그래도 지금이 제일 좋구나. 천천히 걸으며 이런 저런 생각들이 스쳤다. 날은 따뜻했고 서울 도심…

  • |

    강진, 에어비앤비 스테이

    + 강진 에어비엔비 강진에는 호텔이 없다. 대신 옛 귀족 문화가 번성했던 고장으로 잘 보존된 고택들이 여럿 있다. 우연히 에어비앤비에서 고택에서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보고 숙소를 예약한 게 먼저였고 그렇게 강진을 가게 되어 추석 전날들을 보냈다. 읍내 시장에서 떡도 사먹고, 전어 한상 차림도 경험했다. 보름달이 되어가는 강진항 바다 노을도 보았다. 지역의 특별히 맛난 무화과도 잔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