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빠르다

가을은 빠르다. 좋아서도 빨리 가고 끝을 향해 가기 때문에도 빠르게 느껴진다. 생일이 10월이라 가을이 되면 건강검진을 챙기고 있는데 올해는 뜻밖에 직장에서 작은 종양이 발견되어서 2주간 bowel prep을 세번에 걸쳐 하고 EUS로 종양을 제거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 덕에 몸무게가 순식간에 50kg 미만까지 떨어졌고 피곤한 나날이 이어졌다.

선선해진 어느 가을 주말 아침 풍경

건강검진에서 발견되면 모든 게 불행 중 다행이긴 하다. 그렇게 수척해진 몸이지만 집에 있을 수는 없는 날씨가 이어지고 오히려 시간의 소중함도 더 강해져 젬스와 또 제냐와 짧은 나들이를 했다.

가을 설악 흘림골 등반

10월 둘째주 주말 경 설악산 단풍이 절정일 것이라는 예보를 진작 확인하고 대한민국 숙박대전 기간에 설악산 숙박을 예약했다. 강릉, 메시 56에서 우니덮밥을 한그릇 먹고 즈므로스터리에서 커피한잔 하고 속초로 향했다. 속초롯데리조트에서 테슬라 충전하는 동안 바다 둘레길을 걸었다. 물빛이 맑았다. 어둠이 내려 앉은 울산바위를 바라보며 체크인 하고 저녁으로는 홍게무한리필 집에 가서 한시간 반동안 배불리 먹고 나왔다. 다음날 아침, 미리 국립공원 공홈에서 예약해둔 시간에 맞춰 등산을 하기 위해 나섰다. 흘림골~주전골 등산은 그래도 설악산 안에서는 난이도가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시만 나는 죽는 줄 알았다. 내리막의 힘겨움에 죽고 난생 처음 보는 절경에 놀라고. 네시간 여 걸으며 눈이 즐거울 뿐만 아니라 이런 가을을 만나게 됨이 새삼 감사했다. 돌아오는 길 강릉에서 방문한 펌킨 오울 에스프레소는 이 여행 마무리로 완벽했다. 다음엔 이 집 미트파이를 먹으러 강릉행이다.

워커힐 추계 학회, 성수 나들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요즘의 소아청소년과이지만 가을 학회는 전통적으로 워커힐이다. 한강이 반짝이고 강가로 단풍이 찬란하다. 미리 호텔 예약을 했었다. 브롬톤 타고 성수동에 가서 서울-프렌치 분위기를 눈으로라도 즐겼다. 프라이데이 무브먼트에서 그립스와니와 그레고리가 콜라보로 진행한 백팩도 생일 선물로 받고 Hitch라는 처음 보는 국내 브랜드의 보라색 모자도 샀다. 무엇보다 오랜만의 야라가 좋았다. 춥지도 덥지도 않았다.

본업

새해가 오기 전에 올해는 논문들을 마무리하기 위해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APAAACI에는 포스터만 전달하고 체력 정비함을 택했다. 일본에서 열린 JSA에도 구연발표 영상만 보냈다. 목표는 내년이 오기 전 2년 넘게 진행된 연구들로 원저 세개 모두 submission하고 워크그룹에서 진행한 다기관 연구결과로는 draft를 쓰는 것이다. 우선 하나는 거의 완성해서 내 손을 떠나기 시작했고, 또 하나는 수정이 남았고, 나머지 하나는 reference 리뷰를 시작해야 한다. 가을이 지나가는 속도 만큼이나 내 일의 속도에도 집중력이 발휘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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