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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9박 10일: 포지타노-나폴리-피렌체-파르마

여섯번째 이탈리아 여행이다. 예정되었던 미국 학회 일정이 너무 타이트하고 완전히 지쳐 휴가로 전환하고 다녀왔다. 어느날 마일리지로 항공권을 끊었고 여정을 chatGPT랑 의논해서 결정했다. 그리고 어느날 밤 숙소를 환불불가로 모조리 예약하는 걸로 확정했다

포지타노 1박

랜딩 후 밀란 말펜사 공항 쉐라톤에서 자고 일어나 새벽 나폴리행 비행기를 탔다. Europcar에서 렌트한 피아트 수동차를 픽업했다. 꼬불꼬불 아슬아슬한 길을 따라 아말피로 내려가 따끈한 파니니와 맥주로 이탈리아를 시작했다. 그리고 하루를 온전히 보낸 포지타노. 기대하면 별거없다고 하지만 여느 때 여느 이탈리아보다 온화하고 아름다웠던 포지타노였다. 2월에 다녀왔던 이탈리아는 비가 잦았고 6월에 다녀왔던 이탈리아는 너무 더웠기에 나로서는 완벽한 날씨에 작은 보석과도 같은 남부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스쿠터를 빌려서 가져간 헬맷에 쎄나를 껴서 둘이서 아말피와 포지타노를 해질무렵까지 돌아보고 해변에 누워 지는 햇살을 느끼며 휴가를 만끽했다. 씻어도 씻어도 미끄러운 물과 맑고 좋은 공기를 경험한 Patrea suites에서 숙박한 것도 참 좋았다. 누군가 차를 갖고 포지타노로 간다하면 운전 실력이 월등해야 한다고 조언할 것 같고 거기서 스쿠터를 타고 싶다고 하면 몇번이고 그러라고 말할 것 같다.

나폴리 2박

여행이 사람을 겸손하게 하는 시간이라면 폼페이는 딱 그런 장소였다. 보고 또 보고 밟고 또 밟아보아도 밑겨지지 않았다. 번영했던 문명의 흔적과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마지막을 살아있는 자들에게 증명하지만 나는 소멸을 부정하고 싶었다. 폼페이를 뒤로 하고 수동 피아트로 고속도로를 달려 나폴리 도심에 입성했다. 지옥의 운전이라는 이탈리아 남부 여행을 했었기에 나폴리도 그렇겠거니 했지만 세상에나. 어나더 레벨의 카오스였다. 그래도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시간 맞춰 마중을 나와 있어서 너무나 수월하게 체크인했다. 운전에 기가 빨린 상태로 맛본 첫 나폴리 피자와 갓 내린 맥주 한잔. 내가 아는 피자인데 그 피자가 아닌 피자 맛이다. 다음날 아침 시작은 Gambrinus 카페에서 스트라파짜토와 바바로 했다. 카페에 들어서는 순간 나폴리에 대한 모든 인상이 달라졌다. 눈도 입도 즐거운 잊을 수 없는 아침이었다. 또다른 피자를 먹고 관광 맛길을 걸었다. 산카를로 극장에서 오페라는 못봤지만 overture들로 구성된 열정적인 공연도 보았다. 바바는 이탈리아 여러 곳에서 먹을 수 있고 감브리누스에 맛있는 빵이 워낙 많지만 그래도 바바만큼은 꼭 먹어보라고 하고 싶다. 나폴리 피자는 두번 이상 먹어보라고 그리고 남부 여행 여정에 나폴리를 소홀하게 넣지 말라고 하고 싶다. 징글징글한데 애틋한, 독특하고 강렬한 나폴리다.

피렌체 3박

나폴리에서 기차를 타고 세시간여, 드디어 피렌체다. 기차역에서 가까운 L’Orologio에 체크인했다. 머무는 내내 고급스러운 욕조와 매립형 스피커, 적당한 도심뷰가 좋았다. 처음 가는 피렌체기에 잔뜩 기대하며 프리뷰를 엄청 많이 했다. 메디치, 브루넬레스키, 우피치에 대해 책도 읽고 여행 책도 사보았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했기에 두오모도 올라가고 우피치도 갔지만 나름 욕심내지 않는 여정과 가득찬 먹부림을 완성했다. 우리나라에서 인기 많은 BDM, 키안티와 같은 묵직한 이탈리아 와인을 그리 좋아하지 않기에 잘 수입되지 않는 프로세코, 메를로 등 다양한 품종을 맛봤다. 볼로냐, 파르마를 여정에 남겨두었기 때문에 리볼리타 같은 전통의 토스카나 음식을 시도해보았다. 우피치에서도 느끼지 못한 감동을 성 스피리토 성당에서 느꼈다. 여정 중 가장 가슴 깊이 예술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비가 오는 피렌체는 고급스럽고 아름다운, 앞으로도 없을 것 같은 유일한 완성체같은 느낌이었다. 쇼핑템도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피렌체는 꼭 방문할 몇곳, 꼭 먹어볼 무엇, 혹은 꼭 사야할 몇개. 이런식으로 정리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파르마 2박

피렌체에서 차를 몰고 파르마로 가는 길에 볼로냐에 들렀다. 비오는 점심에 라구 파스타와 라구 소스로 만든 라쟈냐 그리고 볼로냐의 람브르스코 와인을 페어링 했다. 여정 내내 많은 맛집에 들렀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볼로냐의 점심이었다. 모데나에 들러 페라리 박물관도 방문했다. 페라리 빨강은 실재로 봐야 와닿는다. 세상에 그 많은 빨강을 하나같이 아름답게 뽑아낸 것도 놀라웠다. 마침내 파르마에 체크인하여 처음 맛본 파르마 햄와 튀긴 빵으로 저녁을 시작했다. 흐허허허. 헛웃음이 나오는 맛이었다. 나는 그 동안 뭘 먹고 산 것인가. 이후로도 파르마에서는 먹방기행도 하고 미술관에서 둘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림을 찐으로 보고 아늑한 도심 풍경을 즐겼다. 파르마지아노 레지아노 치즈 공장 견학을 가서 50개월 숙성 치즈까지 기념품으로 들고 말펜사로 돌아오는 길에는 밀란 두오모에서 사진도 찍고, 베스파 플래그쉽에서 에스프레소 한잔 했다. 그리고도 떠남이 아쉬워 알파 로메오 박물관에 들러 극도로 아름다운 차들을 서둘러 구경하기도 했다.

그러니 이 여행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헤어나오지 못할 강렬한 기억으로 남을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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