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첫주 하동 섬진강 십리벚꽃길 다녀오다

Prologue: 봄이 가장 먼저 개화하는 곳

브롬톤을 사고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 중 하나가 하동 섬진강 십리벚꽃길이었다. 전국에서 가장 먼저 벚꽃이 개화한다는 곳. 일제 시대에 심겨진 벚나무가 100년을 품고 십리를 따라 이어진다는 곳. 가장 아름다운 자전거길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곳.

2년전 추석을 강진에서 보내며 섬진강에 들렀고 그 때 본 강변 벚꽃 사진을 본 이후로 언젠가 여기서 자전거를 타고 싶단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긴 겨울에 묻혀 그 마음을 상상하지도 못했고 제주도를 다녀와 일상은 흐르고 있었다.

어느날 문득 아 곧 4월이구나 싶었고 그제서야 숙소 예약을 해볼까 싶어 찾아 봤을 때 켄싱턴 하동은 이미 만실이었다. 이런저런 검색을 해봤으나 어디서 자야 좋은건지 아무런 아이디어가 없었고 다들 매진인 것을 보아 마음만 급했다. 십리벚꽃길이 화개장터에서 시작된다고 하니 인근 숙소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결국 믿고 따르는 에어비엔비 수퍼호스트 숙소 예약을 했고 떠나는 날이 되었다.

막상 예약을 멀리서 던지고 가보니 이 벚꽃은 날짜에 피는 게 아니라 날씨에 핀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전날도 아니고 다음날도 아니고 오늘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고 다음주도 아니고 이번 주말이 맑아야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결국 도와주셔야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가본적 없는 우리는 인파가 얼마나 몰리는지 전혀 몰랐기에 용감했고 그래서 가는 내내 아무 걱정도 없었다. 걱정을 했다면 가지 않았겠지. 완벽했다.

우리는 멀리서 가는 터라 금요일 오전에 출발해도 저녁 식사시간에나 도착했는데 저녁에 이미 관광객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쌍계사까지 살짝 길이 막히는 새발의 피를 맛본 게 결과적으로 여행의 운을 도왔다.

화려한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에 쌍계사 초입에 위치한 식당에서 재첩정식을 배불리 먹으며 미리 천천히 동네 한바퀴 돌았다. 그렇게 자전거를 위한 주차 지점 등을 알아뒀고 모든 인파와 역주행에 성공하여 벚꽃을 만끽할 수 있었다.

숙소는 칠불사 근처에 위치했다. 쌍계사에서부터 칠불사까지는 왠만해서는 막히지 않는다. 쌍계사부터 화개장터까지는 러쉬를 피해서 다니는 요령이 필요하다. 단언컨대 한바퀴를 하루에 돌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은 자전거다.

첫날: 화개면사무소~간진교 브롬톤 왕복. 약 20km

아침 일찍 인파가 몰리기 전에 서둘러 화개장터까지 차로 내려갔다. 화개장터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해두고는 브롬톤을 펴서 화개장터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날씨는 완벽했다. 섬진강 자전거길은 차와 기본적으로 같이 다니는 상황이라 차가 많은 길에 예쁜 사진을 얻기란 쉽지가 않다.

그러나 눈으로 담는 꽃과 남쪽의 빛과 구성지게 아름다운 주변 풍경은 충분히 즐겁다. 섬진강을 따라 한바퀴 돌아보면 오전에는 동편에 오후에는 서편에 해가 든다. 이것만 잘 활용해도 시간대별로 더 좋은 지점에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첫날은 브롬톤 라이딩을 중심으로 일정을 짰다. 화개장터 동편~섬진강~십리벚꽃길~화개장터 서편에서 마무리하는 경로를 택했다.

화개장터는 이맘때 오전 9시를 넘으면 인파가 어마어마해진다. 그리고 다행히 많은 식당이 매우 일찍 문을 연다. 우리는 9시가 조금 안된 시각에 화개장터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맛있다고 소문을 들은 매화 버섯을 화개장터에서 하나 산 뒤 쌍계명차에서 차를 한잔했다.

이어 날이 조금 따뜻해지자 1-2-3번을 도는 자전거길 투어를 시작했다.

양쪽으로 벚꽃 터널이 옹글차게, 길게 늘어지는게 장관이다. 지점 지점 그 아름다움이 달라 사람이 많아도 한 부분에 몰려있는 것을 보기는 어렵다.

차량 방향과 역행하면 위험할 수 있어서 1에서 3방향으로 돌았는데 1에서 2구간은 자전거길이 있지만 2-3구간은 자전거길이 따로 그어져 있지 않아 어떤 상황인지 궁금했었다. 비슷하다. 오히려 자전거길엔 나뭇가지 등이 많아서 조심해서 달려야 하는 반면 3번은 차길에 준해 정비를 해두어서 안전한 면도 있었다.

왕복을 하고 보니 꽤 출출하기도 했고 인파가 조금 빠지는 걸 기다렸다가 해가 기우는 풍경이 보고 싶기도 해서 마침 교통 정리중이시던 경찰아저씨께 여쭤보고 유명하다는 하동 조양 숯불갈비집에서 초벌된 양념갈비를 먹었다. 에너지를 거하게 보충하고 밤톨 카페에서 커피 한잔 한 후 브롬톤을 차에 싣고 라이딩을 마무리했다. 차로 하동온천모텔사우나로 이동해서 목욕을 하며 열기를 식혔다.

얼마만의 온천이었는지 행복했다. 하동온천모텔사우나는 십리벚꽃길과 매우 근접하여 씻고 나왔을 때는 기운 햇살에 온통 가득한 벚꽃이 절정의 봄날을 싱싱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십리벚꽃길 따라 걸어 내려가보았다.

카페들 마다 사람이 가득했는데 차밭과 벚꽃에 섞여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도 봄이 가득했다. 브릿지 130에 앉아 시원한 음료 한잔 하고 있노라니 어느덧 해가 지고 살짝 쌀쌀해진다. 라이딩하기 좋은 계절이다.

서편에는 아직 빛이 남은 모습을 보고 차로 정금교를 지나 켄싱턴 방향으로 올라갔다. 동편의 벚꽃이 100여년된 수령이고 차밭과 매우 인접해있다면 서편의 벚꽃은 수령이 그것만은 못하고 차밭은 멀리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 다르다.

결국 유명세가 그것에 나뉜 거지 서편도 충분히 고즈넉히 아름답다. 하루를 라이딩에 바쳐 피곤한 우리는 켄싱턴 1층에 위치한 CU에서 편의 먹거리를 챙겨 숙소에서 좀 쉬며 이튿날을 준비했다.

둘째날: 십리벚꽃길을 걷다.

숙소 근처는 날이 채 밝기도 전이지만 아래 쪽은 해가 빨리 뜨는 것을 아는 우리는 체크아웃을 일찍 하고 길벗민박까지 쭉 차로 내려갔다. 인근에 주차를 하고 화개장터 방향으로 십리벚꽃길을 걸었다. 이 곳은 자전거로 다니거나 차로 다니는 어떤 형태보다 걷는 것이 좋다.

아름다워서 계속 설 수 밖에 없기도 하고 함께 걸은 연인은 도저히 잊을 수가 없을 만큼 길이 아름다워 혼례길로 불린다할 만큼 평생 기억남을만한 아름다운 풍경을 선물한다.

특히 이 날은 차가운 하늘 빛에 기댄 하얀 벚꽃이 생글생글하기만 했다. 뒤로 피어오르던 물안개와 차밭에 맽힌 이슬까지 참으로 아름다운 날이었다. 한참을 걸어 차로 돌아오는 길에 간단히 아침을 챙기고 구례화엄사 ic로 향하는 길에 보이는 강변 풍경은 이곳에 들어올 때 보이던 것에 비해 평범해졌다.

그만큼 십리벚꽃길은 빼어나다. 한번 보면 잊혀질 수 없단 말이 맞다.

All photos taken by Jamesgraphy, jm74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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