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PD 수첩

이미 늦었다. 돌이킬 수 없는데 현실 부정하고 무기한 휴업이라도 하면 달라질거라 생각했던 의대 교수들도 있었고 지금도 투쟁하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선후배, 동료들이 아직도 많다.

문제가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아실 분.

그런데 소아청소년과를, 그것도 중환자를, 그것도 지방에서, 그것도 임상 과장으로 온갖 파도 다 넘겨가며 운영하는 내 입장에서, 내 판단으로는 완전히 끝났다. 전공의가 갑자기 다 사라진다는 건, 인수 인계의 흐름이 끊긴다는 것이다. 상급 종합병원에서 이렇게 흐름이 끊기면 그 이후는 받는 자가 없으면 패스가 안되어서 골도 못 넣고 지는 축구와 같다. 그냥 경기 끝날 때까지 가만히 있으면 안되겠으니 죽고 싶은 마음으로 진료는 꾸역꾸역 보는거다. 환자들이 ‘우리는 죽으란 말이냐’ 말씀하시는데, 그 죽을 것 같은 환자분들 진료 보는 일은 전공의들이 전임의가 되고 교수를 서포트 하여 팀으로 움직이던 일이다. 미드필더와 수비수 다 한꺼번에 퇴장 당하고 이미 전반전이 종료되었다. 우리 업계에 지금 밤에 집에 가는 생활이 보장된 부모도 없고 주 5일제로 근무하는 사람도 없다. 그리고 매일 죄책감에 시달린다. ‘어디 안가시죠?’ ‘휴진 안하시죠?’라고 질문 받으며…

2천명이 적절한지, 무슨 분석을 토대로 결정한건지, 누가 결정한건지. 나도 궁금하다.

이 사태의 더 큰 문제는 앞으로 할 사람까지 한꺼번에 몰살시킨거다. 안 그래도 비급여와 실비보험 구조 속에서 몸 편하고 쉽게 돈버는 유혹을 뿌리치고 환자와의 이야기와 개인적 성취를 인생의 의미로 살아가던 근근히 연명하던 필수과 인력을 한번에 파내 버렸다. 정말 이게 가능이나 한 짓거리였나. ‘환자 생명을 담보로’ 니들이 일 안하고 그만 둘거냐?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에는 물리적인 한계가 분명 있다. 그걸 지금 늘려서 10년후 의사 만들어서 뭘 어떻게 해결하겠단건지 머리가 똥이어도 알 사람들이 왕을 거역하면 안되니까 어깃장을 놓으며 지저귀고 있는 꼴이라고 본다, 나는. 공감도 할 수 없는 숫자 2000명을 1년만에 증원한다는 미친 판을 벌려놓고는 환자가 길에서 헤매는 이 순간에도 편하게 처 자고 사는데.. 자 언론이 뭘 하고 있는지 한번 보자.

종합병원 전문의로 교수로 사는 지난 18년간 단 한번도 내 연봉이 2억이 초과된적 없다.

어디서 2천명이 나왔는지 누구 하나도 분석하고 되묻는 사람이 없었다. 돈을 엄청 많이 버는 집단이고, 전공의와 학생들이 100% 돈에 눈이 멀어서 나갔다고 하는데 그걸 다 똑같이 얘기한다. 의대 교수들도 제자들을 히포크라테스 처럼 키울 생각 안하고 100% 돈에 눈이 멀어서 진료도 안보고 같은 의사 편든다고 하는데 그걸 또 다 똑같이 얘기한다. 같은 나라 인간으로서 의대 교수나 되는 철밥통들이 왜 이렇게나 분노를 했는지 되짚고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이 미래를 생각하며 현재를 어떻게 살았기에… 이런 식으로 받은 충격과 불안과 분노를 어떻게 달랠 수 있을 것인지, 위태해진 수많은 환자들에게는 어떻게 해야할지를 또 되묻고, 그렇게 갈등을 이야기하고 봉합하려 노력하는 게 정상 아닌가. 증원되는 강원도는 2등급도 의대를 갈 수 있어서 집값이 오른다는 언론 보도를 어제 읽는데 정말 망국이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언론이 이 정도로 최악인 줄은 몰랐다. 어떻게 정부는 환자가 위험해진다는 걸 알면서 이런 방법으로 사회적 불만을 덮으려고 하는가. 이것들이 인간인가. 그리고 어떻게 언론은 모든 사회적 불만을 한 집단에 쏟아버리는 짓거리에 편승해서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앵무새처럼 떠드는 것 밖에 하지 않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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