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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1월의 독서: 면도날, 12.12 쿠데타와 나, 일류의 조건, 도쿄 트렌드 인사이트

면도날, 서머싯 몸

작가 1인칭 시점으로 세계대전 후, 경제공황을 지나는 시점의 인물들이 그려진다. 옛 시대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각기 다른 삶이 묘사되는 모습에서 요즘의 나와 주변 인물들과 대입되는 면들이 많이도 보였다. 고전답다. 사람의 이런 저런 모습을 많이 보고 겪은 지금의 내게, 고전 소설은 과거보다 더 와닿는 면이 있다. 보여지는 시대인 것은 그때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그저 살아가는 자에게 욕심이란 밑도 끝도 없이 자란다. 소설 속 앨리엇의 욕망과 추하디 추한 마지막 모습을 보며 내려 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이사벨의 자기 합리화에도 내 모습이 보여 부끄러웠다. 무도회에서 어린 여자를 바라보는 나이 많은 여자들을 묘사한 부분도 요즘 시대 여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장 허구 같은 캐릭터인 래리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가 구하고자 하는 것을 느꼈다.

“이기심과 정욕, 관능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평장과 억제, 금욕, 단념을 추구하며 정신을 다잡고 자유를 열렬히 열망하면 해방을 얻을 수 있다.”

가진 것이 멋져야 내가 멋진 것 같은 시대에 열심히 휩쓸려 살며 스스로를 높이 평가하던 어리석은 나의 새 한해 시작을 함께하기 좋고 읽기 좋은 책이었다. 내 가슴 어딘가에 싹이라도 지키고 싶다.

12.12 쿠데타와 나, 장태완

회고록이 반드시 사실에 기반한다 할 수는 없기에 12. 12 사건을 놓고 상반된 회고록들이 출간되었다. 역사가 진실을 알게할거라는 무책임한 말을 앞세워서 김영삼 정권은 전두환을 사면했고 문재인 정권은 노태우 장례식을 국장으로 치렀다. 2024년 12월 3일, 한 겁대가리 없는 돼지는 그래서 계엄을 국회 의원 탄압과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해 선포했다. 법을 안다는 사람의 역사 인식은, 힘만 있으면 다 빠져나갈 수 있으며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 책은 ‘여생’에 접어든 자가, 실패한 작전에 대한 기록이자 증언으로 작성되었다. 나는 일생과 일가족이 망가진 댓가를 치르면서도 정반대에 섰던 사람의 회고록을 읽고 싶었다. 장태완은 전두환의 쿠테타와 같은 역사가 다시 재발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구체적으로 무엇이 필요한지를 책으로 작성했다. 지금 시절에 가장 와닿는 부분은 진압 실패의 원인으로 ‘통수계통 마비’를 지적한 것이다. 군 최고 통수권자는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쿠테타를 일으킨 자를 진압하라, 생포 혹은 죽여라.’를 명령해야 한다.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재산은 마땅히 그렇게 지켜져야 한다. 매번 허구의 북한 핑계를 대고 국내 유혈 사태를 피해야 한다는 위장 뻐꾸기 같은 소리를 하면서 자신들과 자손들의 안위를 우선해서 살폈다. 내란죄는 군령체계에 따라서 진압해야 하는게 순리이지만 이 나라 역사는 유감스럽게도 아무것도 제대로 심판하지 못했다. 그 시절 쿠테타로 정권을 찬탈한 직계 당원들이 현재도 정치계의 중진으로 열렬하게 활동하고 있다. 반란, 이적의 죄를 지었으나 쿠테타를 성공시킨 하나회 신윤희는 이 나라를 북으로 부터 지켰고 박정희의 적통 후계자로 정권을 이양했다며 본인 인생을 정당화한 책을 내고도 지지 받는 생을 살고 있다. 지금도 북한, 간첩, 빨갱이와 같은 허무맹랑한 프레임으로 사건의 본질을 흐리게 하는 사람들과 세뇌받은 대로 움직이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니… 사건의 심판을 역사에 맡기고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무책임한 씨앗들이 살아 남아 괴물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군 최고 통수권자는 최상목이다. 자신과 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괴물을 체포할 것을 지시하지 않고 있는 자는 쿠데타 성공의 빌미를 주는 자다. 12.12때 최규하 대통령과 노재현 국방 장관, 특히 노재현 국방 장관이 그렇게 살다 갔다. 문정권이던 2019년에 사망한 그는 지금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일류의 조건, 사이토 다카시

일의 경력이 어느덧 거의 20년차다. 그러니 모방하고 요약하고 반복하는 것 까지는 많이 했다. 훌륭한 스승을 만났으니 모방하고 반복하는 것에 행운이 따랐다. 이 책 후반부에 작가는 스타일화를 이야기한다. 나는 무아, 혹은 내재화 작업이라고 생각해왔던 경지인데 많이 지쳤다는 핑계로 일년의 반은 합리화 하며 보낸 듯 하다. 대가가 되길 희망하지는 않으나 내 일에 관해 쌓아온 실력을 스타일화 해나가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하루를 리듬감 있게 열고 용기를 의식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기술화 하며 무장하는 거다. 무엇보다 익숙해졌기 때문에 생긴 여유들을 방만하게 사용하지 말자. 에너지의 완전한 연소 혹은 기분좋게 피곤함을 맛보도록 푸쉬를 반복해보는 거다, 새해에는.

도쿄 트렌드 인사이트, 정희선

수년만에 이북을 새로 샀다. 크레마 사운드에서 페블로 업그레이드 하니 우선은 긴 뱃터리 성능이 편하고 넘어가는 속도가 빠르고 다운로드도 잘 된다. 모든게 만족스럽다. 처음 다운받은 책이 도쿄 인사이트 였다. 2023년 기준으로 도쿄 시장 특성에 대해 요약한 책인데 읽기 편하고 약간 잡지처럼 읽게 할 수 있는 건 좋았다. 이런 류의 책들이 다 그렇듯 깊이 생각할 것이 있다거나 정말 인사이트를 얻는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몇몇 측면에서 생각할 거리가 있었다. 첫째, 로봇에 관심을 가져야겠다. 둘째, 최대한 걷고 운동하면서 나이 들어야겠다. 제목은 도쿄 인사이트지만 내게 와닿는 건 도쿄라는 외형 보다 상태인 노령화 그 자체였던 것 같다. 우리나라 인프라는 내가 노후를 보낼 때까지는 잘 갖춰지지 않을 것 같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처음으로 최고령 사회를 시작하게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집안에 물건이 쌓이는 것을 경계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아깝다고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나중에는 오히려 더 큰 짐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능한 좋은 물건을 옆에 두고 오래 쓰고 새로운 것을 살때는 기존의 것을 버리고 살 것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생활 습관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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