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 미니 컴포넌트로 듣는 라디오와 CD

I. 옛날 이야기

90년대 후반 우리는 라디오를 들으며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면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을 했다. 2000년대 초반에 소리바다, 토렌트 등을 뒤지며 음원을 다운로드 받고, 그걸 CD에 구워서 듣다가, USB에 옮겨서 듣다가 도토리를 사서 수집한 내 리스트를 재생하면서 블루투스 지원되는 오디오를 찾기 시작했다. 그때 실버 애플 팟은 트렌드의 상징이었다. 그 후 음원 구독 사이트가 열렸고, 블루투스는 당연한 것이 되었다. 그렇게 세월이 10여년 흐르고 좋은 음악은 주위에서 범람하고 음악을 듣는 게 무척 쉬워진 시대가 되었다. 나 역시 새 시대를 반기며 올인원 앰프 기종 변경을 몇번 했다. 작은 보스 올인원 재생기 하나가 집 전체에 웅장하게 뭔가를 재생하고 전세계 라디오를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이 신기하고 만족스러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이젠 그것도 과거 이야기고 지금은 각자의 기계로 각자의 공간에서 플레이리스트를 취향대로 듣는 세상이다.

II. 지금의 이야기

그런데 한편으로는 극단적으로 다시 음원에 돈을 쓰는 세상이 왔다. 요즘 작업실에서 LP로 하나하나 천천히 듣기 시작하면서 잊고 있었던 음질과 현장감, 소통하던 라디오가 그리웠다. 세월이 흘렀지만 라디오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간혹 산책하면서 듣는 KBS 클래식 FM이 참 좋았다. 퇴근길 배철수 아저씨의 라디오도 반가웠다. 어릴 때 그림 그릴 때 정말 하루 종일 들었던 라디오가 MBC 라디오였다. 집에 그 세월 하나 하나 귀하게 모았던 CD도 많다. 과거를 재생하자니 오디오에 적지 않은 투자를 해 왔는데 어찌된 일인지 집에 CD 플레이어는 다 사라졌다.

III. 음악 감상실이 별건가

마침 게스트룸 선반에 공간이 있고 혼자 조용히 음악 감상하며 커피도 마시고 논문도 읽는 방을 만들고 싶었다. 지금 바로 이 순간 처럼 글도 쓰고. 그래서 ‘미니 컴포넌트’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마란츠 MCR-B370이 좋은 것 같았다. 그런데 가격이 50만원대 후반이고 크기도 좀 컸다. 게스트룸이 5평도 안될 것 같고 하루에 한두시간 들을 것 같은데 이 비용은 왠지 좀 너무한다 싶다. 어쨌거나 충동 구매인데… 그래서 고른게 소니 CMT-SBT20이다. 나온지는 한참인 것 같은데 최근 하이마트에서 몇달 전시된 상품이 있길래 전시가로 구매했다.

IV. 소니 미니 컴포넌트 CMT-SBT20

소니 미니 컴포넌트의 첫인상은 딱 가격 처럼 보였다. 작고 큰 기대 안되고 소박하네, 뭐 그런 느낌. 라디오 안테나를 쭈욱 뽑아서 테이프로 창틀에 붙이고 KBS와 MBC 라디오 부터 맞췄다. 안테나를 뽑아 보는 게 참 구질하다 싶었는데 라디오가 잘 나온다. 생각보다 재현이 풍성하고 방이 작아서 그런가 첫인상 보다는 훌륭하다. CD는 한 개가 들어가는데 2003년에 EMI에서 나온 브라운아이드소울 CD를 넣었다. 소리가 다르다.

소니 미니 컴포넌트 CMT-SBT20

V. 커피와 음악

아침을 먹고 젬스가 일찍 내려 준 커피 한 잔 들고 들어와 방에서 혼자 글을 쓰면서 라디오를 켜놓은 오늘은 아침이 여유로운 목요일이다.

볼타커피

음악을 더 즐겁게 해주는건 커피. 그리고 오늘은 원주 볼타커피에서 내높은 에티오피아 싱글 오리진 원두를 처음 내려본다. 원두는 대개 볼타커피에서 사는 편인데 다양한 라인업이 있는지라 처음 맛본다. 처음부터 뒤까지 맛이 유난히도 좋다.

멜리타 아로마 프레쉬

캡슐 커피, 에스프레소 머신을 거쳐 거의 일년째 커피는 전자동 드립커피 머신인 멜리타 아로마 프레시로 내리고 있는데 기계인지라 변수 없이 맛을 일관되게 재현할테니 원두의 차이를 확실하게 느끼게 된다. 맑은 바람과 작은 방 안에 맑게 퍼지는 악기 소리. 좋은 원두를 편안하게 드리핑 하는 무던한 머신. 그리고 사이즈와 잡는 느낌이 딱 좋은 직접 고른 빈티지 로얄코펜하겐 커피잔까지.

빈티지 로얄 코펜하겐 잔과 소서

출근 전 시간이 다 좋다. 복잡하고 완벽한 것 보다 편안하고 일상적인 게 더 좋아지는 나이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