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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킨토시 앰프 MA252를 데려왔다.

예민하다 하면 흔히 나쁜 뜻으로 사용되고 예민함에 대한 지적은 내 인생의 꼬리표처럼 따라 다녔다. 불혹을 지나 생각해보니 예민한 점이 내 직업에 큰 무기 중 하나인 듯하여 고마울 따름이다. 무엇보다도 소리에 예민한 편이라 청진이 취미이자 특기인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아무튼 나도 예민하지만 커서 생각해보니 꽤 예민한 부모님 밑에서 자라기도 했다. 불편한 것과 시끄러운 것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아빠는 아침이면 항상 KBS 1FM 라디오를 켰다. 오래된 JBL 스피커 두짝은 매킨토시 앰프에서 연결된 튜너를 통과해서 여러 곡을 아침부터 연주했다. 어릴 적부터 자란 우리집 거실에는 높은 것이 없었다. 소리는 꽤 웅장하게 공간을 감쌌다. 내 어린 시절 아침에 퍼지던 음악과 거실 마룻바닥에 길게 드리우던 햇살이 부모님 댁에 대한 가장 큰 이미지 중 하나인 것 같다.

매킨토시가 최고의 앰프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아빠의 ‘것들’중 그 매킨토시가 탐이 났다. 집에 놀러갈 때 마다 그 아침의 라디오가 좋았다. 진공관의 빛깔과 왔다갔다 하는 침도 지금 생각하니 향수가 될만했다 싶다. 젬스랑 살면서 아침은 ytn 뉴스가 차지했고 그것에 익숙해졌지만 제냐를 데리고 산책하며 대화할 상대가 없을 때는 kbs콩을 틀고 이어폰을 껴고 나선다. 여전히 라디오를 홀로 조용히 듣는 시간이 좋다.

더는 내 인생에서 경제적으로 실수령액을 늘리는데 한계가 있지 않나 싶은 때가 되었고 나는 매킨토시를 들이기로 했다. 부모님 집에 있는 것 같은 소위 전통 매킨토시는 아니지만 마침 MA252는 하이브리드 앰프로 대중화된? 가격으로 출시되었다. 증폭을 해서 진공의 맛을 살짝 내는 매킨토시인데 출시된지 꽤 지났는데 여전히 인기다. 새로운 시대의 매킨토시인 셈. 안테나 달고 튜너 달고 그런 거추장 스러운 것들은 모던한 스타일로 가벼이 가자며 포기했지만 SLASH 슬래쉬라는 적절한 가격의 블루투스 리시버를 연결해서 작업실에 두고 쿵쿵쿵 볼륨을 높여 스포티파이를 들어보니 시각적으로도 즐거운 소리가 난다. 향후 테슬라 인앱으로 애플뮤직이 지원될 거란 소문이 있다. 그 때면 음원 서비스를 애플 뮤직으로 갈아 타고 조금 더 좋은 음원으로 다양한 클래식 음악까지 들을 수 있게 될 것 같다. 공간을 채우는 아름다운 소리, 이만한 위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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