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의료 파국

교수인데 학생도 없고 전공의도 없는지가 어언 한달째다. 전국의 상급 종합병원은 다 같이 침몰 중이다.

필수과. 이 말부터 참 코메디였다. 모든 환자들은 아프면 병원을 가야하고, 모든 심하게 아픈 환자들은 상급 종합 병원에 가서 진료를 봐야 한다. 그러니 환자에게 모든 과는 다 필수과이다. 의료 서비스는 필수재 아닌가. 그러니 힘들고 수입이 안 좋은 과는 가능한 없도록 하는게 의사가 모든 영역에 가장 잘 분배되는 구조다. 이렇게 되도록 정부가 관심을 갖고 보완했어야 했다.

기피과. 이 말은 참 와 닿았다. 언젠가 부터 나는 기피과 교수 였다. 떨턴이라고 한다. 지원한 과를 여러 이유로 못 가게 된 2월의 인턴들. 성적, 경쟁, 평판 여러가지 이유로 원하던 과를 못 가게 된 서른 채 안 된 사회 초년생들은 멘붕을 겪으며 스산한 2월을 보낸다. 군대를 가야하나. 일년을 뭘하나. 2차 병원을 지원하나, 등등. 그런 친구들에게 소아과 하라고 떠들어 보았다. 그래도 안 한다는 이유가 힘들고 돈도 못벌어서? Nop. 왜?라고 물어보면, 교수는 못하겠고 개원가는 수익 구조가 안좋다. 교수 못하겠는 이유? 그건 분명하다. 여기는 많이 아픈 애들이 오는데 잘못하면 감옥 가잖아요. 이미 떨턴이다. 예전에 기라성 같던 사람들이나 소아과 하고 교수도 하지 ‘나같은 사람’은 하다가 감옥 가요. 학생도 실습 나와서 그랬다. ‘소아과를 하고 싶긴 한데 저도 감옥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 놈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의 현실을 일깨워 준 놈이다. 이렇게 아주 필요한 사람처럼 살다가도 환자 사망에 잘못 엮어 들어가면 유죄 판결 받고 언론 매장 당하고 내 인생 끝나겠지.

낙수과. 여기부터는 화가 났다. 그냥 많이 퍼부으면 누군가는 할거라고?! 내가 살다 살다 별 소리를 다 듣는다 싶었다. 어린 의사들과 같이 이틀만 지냈어도 알았을 거다. 그들은 불합리한 리워드와 하이 리스크를 감내할 이유가 없다. 쌀을 농사 지어 팔아서 90원을 벌겠니, 망고를 수입해와서 3000원에 팔겠니? 쌀을 팔려면 대학 졸업증 갖고 농사를 3~4년간 밤일하며 배워야 하고 망고를 팔려면 대학 졸업증만 갖고 와. 쌀은 목숨과 직결된 작물, 망고는 옵션. 그러니 라면 3000원을 주고 사먹는 시대가 와도 우리 나라에서 쌀은… 절대 비싸질 수 없어. 게다가 너 쌀 흉작 오면 감옥 간다.

망고나 아보카도 가격에 관심 있는 사람이 있는가? 쌀, 사과, 밀가루, 파. 물가 지표에 인용되는 것들이 다양한데 망고, 아보카도는 없다. 비급여 가격에는 민감하지 않다. 얘네가 한 때 이 나라에 없었던 과일이듯, 한 때 비급여도 많지 않았다. 의료의 발전은 계속되었다. 그 많은 발전을 다 급여로 담을 수 있을까? 신의료, 신약은 모두 현재의 물가가 반영된다. 비싸다. 공단이 감당할 수 없으니 비급여다. 그런데 생사를 오가는 아이들의 질환명이 현대적으로 센세이션 하게 바뀔리가 있나. 그 위기만 잘 넘기면 잘 크는 아이들. 그게 매력인데 그렇다 보니 신약 개발도 시장성이 없다. 우리는 검사도 많이 안 한다.

‘비급여’를 많이 가진 과와 함께 평가 선상에 놓인 상급 종합 병원 안에서 ‘적자’인 소아과가 얼마나 치였을까. 우리나라 상급 종합 병원의 소아과 교수 치고 ‘돈 못 버는 과’ ‘할수록 적자만 나는 과’ 이런 소리 한번 안 들은 자가 없다. 교수 추가 채용은 없었다. 몸값이 문제라고 하던데 글쎄. 인턴1년-전공의 4년-전임의 3년 월 400만원 정도 받고 주 80시간 이상 일하며 8년을 버티면서도 ‘갈망했던’ 월 500만원으로 시작하는 ‘의대 교수’가 못된 사람이 소아과에는 한 때 수두룩 했다. 나도 동기 졸업자의 1/3에 수입에 불과한 돈을 받고 3년을 더 수련해서 교수가 되었다. 지금도 동기 졸업자의 수입 보다 낮은 수입으로 교수를 하고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돈 만을 목표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스스로를 돌아보길. 나는 리워드의 공정성을 따지기 전에 나름의 특수 영역 전문성을 무장하는 길을 선택했다. 내가 구축한 가치는 옳고 그른 그런 게 아니다. 각각이 생의 선택에 있어 가중치가 다를 뿐이다. 그런데 그 선택의 댓가로 꽤 긴 시간을 동료가 충원되지 않는 곳에서 ‘소아과 의대 교수’로 버텨야 했다. 학문적으로 존경했던 선배들이 교수가 되지 못하고 고배를 마시는 모습이 지속되자 의과대학 학생들은 졸업 후 소아과 의대 교수가 되는 길을 걷는 것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동료들도 그만 두기 시작했다. 응급 상황에 애를 봐줄 사람이 없어 데리고 연구실에 두고 환자를 보았는데 애들이 연구실에서 갇혀 기다리다가 오줌을 싸고 울고 있었다는 동료 교수님도 있었다. 맨 정신 아닌 정신은 한 순간에 찾아온다. 그 순간에 짐을 쌌고 인력은 한 곳으로 모여서 생존을 도모했다. 그래서 경기도가 비고 서울 일부에만 소아과 인력 구조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 시대에 나는 경기도 보다도 떨어진 지방에 있었다. 내가 그만 두면 이 자리에 후임이 올 가능성은 없다. 그러면 남은 자들이 더 힘들 것이고 이곳이 무너지는 이유가 될 것이다. 모두가 함께 버텼다. 같이 움직이는 의사 집단이 넌덜머리 나는가. 동지애, 같이 있어야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우리는 그렇게 생존한다. 나와 함께 해주는 동료가 없을 수록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이번 증원 발표는 지방의 소아청소년과를 ‘낙수 중에 낙수’로 본 시선의 종합판으로 여겨진다.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퍼붓기만 더 퍼부어서 가게 하겠다. 이렇게 해석한 내가 이상한가. 피해 의식인가. 바보인가. 가진 능력으로 가장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곳에서 평생을 일하겠다는 사명감. 그걸 완전히 바닥으로 내친 이 결정이 어떤 부분에서 공감이 되어야 하나. 이 판에 의사가 될 사람, 전문의가 될 사람, 혹은 의대 교수들이 이성적일 수가 있을까. 환자가 눈 앞에 있으니 전공의를, 학생을 말려야 했다고? 냉정하게 상급 종합 병원에서 환자는 전문의가 살리지 수련의가 살리는 게 아니다. 우리는 모든 결정을 하고 수련의의 도움을 받아 체력을 유지한다. 지금은 도움이 사라져 체력이 한계에 왔을 뿐이다. 체력이 한계에 와서 꼭 해야할 환자 살리기에만 업무를 집중하고 있다. 당분간, 정확히는 우리가 죽기 전에 환자가 먼저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일은 아마 없을 거다. 치료를 받다가 사망하는 환자를 조사한답시고 불법적으로 차트를 열람하러 공무원이 나와서는 전날 밤을 새고 일한 교수를 불러서 취조하는 이 나라에서, 사직서를 손에 쥐고만 있는 의대 교수들은 오늘도 사방에서 치인다. 죽을까, 그만둘까, 떠날까.

모두가 지방에도 좋은게 있어야 한다 말한다. 왜 맥도날드가 지방에는 잘 안생기는걸까. 서울 맥도날드에 인구 밀도랑 지방 맥도날드 인구 밀도가 같지 않으니 장사 하는 사람이 그냥은 만들리가 없다. 모두가 맥도날드를 원한다면 지방 맥도날드는 세제 혜택이라도 주던가. 연금이 다르던가. 뭐라도 해야하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증원만 했다. 뭐 그래도 어떻게 지금 보다 나아질거라고 그냥 긍정 회로를 돌리면 된다 치자.

우리가 사는 나라는 북한이 아니다. 그래서 ‘필수’ 재료 중 하나인 밀가루 가격도 인상된다. 20년전 7천원이었던 밀가루가 지금 2만원이다. 소아과 진료비가 20년전 7천원이었고 지금 2만원이라면? 안 망했을 수도 있다. 모든 ‘장사’는 순이익을 따진다. 환자를 200명 넘게 보아야 인건비 지출하고 0원에서 시작한다. 이런 구조면 하루 진료 200명을 넘기기 위해 의사가 해야 할 일들이 너무 잔혹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어차피 의사니까 안 잔혹해. 하나도 안 잔혹해. 가 답이다 치자. 그러면 아이가 안 태어나는 시대에 그게 가능이나 하겠는가? 그래서 소아과가 없어졌고, 채용의 자리가 줄었다. 전문의 되어서 일할 곳이 없는데 전공의 지원을 할 까닭이 없다. 시장 가격이 엉망이고 이제는 수요까지 줄었고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된 직종이니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여기까지도 배가 부른 소리니 들어줄 가치가 없다 치자.

그래서 이 얘기로 마무리 한다. 나는 그나마 진즉 알고 있던 일이다. 전공의가 없는 일이 이 나라 상급 종합 병원에서는 별일이 아닌 게 아니다. 이미 우리 병원 지하 식당, 주변 상가 모두가 한 배를 탔음을 느끼고 있다. 지금 적자를 메우던 모든 산업이 같이 침몰의 배를 탔다. 딱 두 곳. 사설 학원과 실손 보험은 신이 났고 정권 유지가 유리해진 누군가는 자기가 이겼다 생각하고 있다. 삼성 화재, 현대 해상, 이 두 실손 보험 회사는 보란 듯이 삼성 병원과 아산 병원을 지방 의대로 분류해서 정원을 늘리는 것까지 해냈다. 내부 인력 수급 구조를 마련했으니 영리 병원화에 유리해질 것이다. 우리 나라 상급 종합병원은 절대 전공의 없이 6개월 이상을 버틸 수 없다. 우선은 도산을 막아야 하니 공단 재정을 퍼붓고 세금을 퍼부을 거다. 돈이 없으니 건보 재정을 늘리기 위해 더 거두려고 하겠지만 우리는 이미 노인 국가다. 부자 감세까지 한 상황에서 중산층을 도산 낼 수는 없을 거다. 포괄 수가제로 건보료 증액 안된다고 광고하겠지만 공공 병원 외에 그 수익구조를 받아낼 병원은 없다. 우리는 이 나라 상급 종합병원의 절반 이상의 도산 처리에 합의한 모양세다. 충청 지역 년 3000명 졸업자중 1000명이 의대를 진학하는 것은 내년이지만 그들이 수련받는 6년 후에 현재 모습의 수련할 병원은 남아 있을 수가 없다. 생각보다 빨리 나뉠 거다. 공공과 영리 병원으로. 그 세상을 마련한 현 정부는 아무 것도 책임 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절대로 무슨 수를 써도 2024년 이전의 시스템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의대 교수이기 전에 국민이기도 하다. 알기 때문에 극도로 화가 나는 것 뿐이다. 내 인생 먹고 사는 것만 해결되면 문제 없는 거라면 화도 불필요하다. 실은 그러려고 노력 중이다. 나는 몇 남지 않은 소아 중환자를 진료 하는 교수고, 내가 필요한 곳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를 고용하는 주체가 영리 병원이 되고 하루 몇 진료 안보는 싱가포르, 미국, 일본 등지 의사처럼 살게 되니 이 상황보다 더 나쁠 것은 냉정하게 아무것도 않다. 다만, 나도 국민이고 나도 늙을 것이고 나도 환자가 될 것이므로 화가 난다. 이 엄청난 이야기를 정말 모두 알고 합의를 하고 있는걸까. 토론회 한번 한 적 없다. 정보는 선택되었고 여론은 이상한 의사들 이야기만 열심히 써댄다. 전국 어디에도 사람 살리는 의사는 없는 마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