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풍천 장어 먹으러 가는길

한국 사람 치고 고창 풍천 장어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그 장어를 먹겠다고 고창을 실제로 가 본 사람을 얼마나 될까. 어느날 고창에 가서 장어를 먹어 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고창이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먼지는 큰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숙소는 한참 전에 변산 소노벨로 예약을 해둔 터였다. 강아지 동반 되는 호텔급 숙소를 찾다보면 숙소 예약은 쉽다. 그리고 장어도 강아지 동반이 되는 ‘장어 파는 부부’로 찜해두고 여행은 오직 그곳을 다녀 오기 위해 시작되었다.

첫 목적지, 청주

원주에서 고창은 약 300킬로미터이다. 서울 왕복도 당일로 자주 하고 통영까지도 거의 쉬지 않고 가는 우리는 300킬로미터 정도 크게 멀지 않다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데 막상 출발하려고 네비게이션을 켜보니 시간이 만만치가 않다. 운전을 해서 가보니 알게되었는데 구간에 국도도 많고 쭉 가는 고속도로 같은 길은 아니다. 그래서 평소 가고는 싶었는데 가지 못했던 남쪽의 장소들을 들러가며 천천히 내려가기로 했다. 첫 목적지는 청주였다. 청주에 간 이유는 쇼핑이다.

청주 센스네

헬리녹스의 택티컬 체어원을 구매하려고 진작부터 찜해뒀으나 그동안 물량이 많이 부족해서 좀체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두개를 사서 작업실에 추가하려 마음 먹고 있었던 터에 청주에 위치한 브롬톤 샵인 센스네가 헬리녹스를 함께 취급하고 있었고 재고도 있어 들르기로 한다. 브롬톤 샵인 센스네에는 이틀전 한국에 정발된 T라인도 있었다. 오랜만에 이런 저런 브롬톤 악세서리를 보고있노라니 한 때 열정적이었던 브롬턴 커스텀이 추억된다. 이젠 구형이 된 내 티타늄 섞인 M6. 비록 기어도 P에 비해 무겁지만 헤드탑을 튜닝한 때문인지 나만의 것 같아 여전히 애정한다. 같은 걸 싫어하는 나는 단종도 나쁘지만은 않다. 브롬톤을 더 무겁게 한 브룩스 안장과 브룩수x에르고 그립도 쇠의 질감과 섞여 시작적 느낌이 좋다. 그래서 아무런 지름신도 영접하지 않고 헬리녹스 택티컬 체어원만 두개 사서 나왔다.

청주 문아이즈

센스네에서 추천받은 몽키만두집에 들러서 가볍게 만두와 쫄면을 헤치우고 향한 곳은 문아이즈 청주 본점. 노란색과 눈모양 하나로 세계관을 이룬 브랜드이다. 건물 외관은 완전 미국이다. 한국 배경 없는 것도 컨셉인지 완전 허허벌판에 위치해 있다. 하필 이번 여행 가는 길에 날씨가 너무 더웠고 긴 옷 밖에 없어 컨디션 조차 기울고 있었기에 그 핑계로 도착하자 마자 포크 찹 반팔 셔츠를 하나 샀다. 단순히 핑계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그래픽 디자인이었다. 포크 찹 프린트로 젬스 셔츠도 하나 골랐고 작업실에 물품 보관할 6L짜리 문아이즈의 아이코닉한 바스켓도 하나 샀다. 전체적으로 문아이즈의 디스플레이는 보는 것만으로도 에너지 음료 마시는 기분이 들 정도로 분위기가 훌륭했다.

부여에서 테슬라 충전

저녁은 군산횟집으로 진작 찜해놓고 출발했다. 가는 길에 부여 롯데리조트에서 테슬라 충전을 걸고 아울렛 구경이나 하자 했는데 뜻하지 않게 크록스 매장에서 각자의 크록스와 지비츠 고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글리터 크록스에 퍼가 라이닝 된 것도 좋았는데 이 매장에 지비츠가 없는 것 빼고 다 있었다. 신나게 고르고 왔는데 집에 와 생각해보니 지비츠 사러 또 가고 싶을 정도다.

군산 횟집, 그리고 이성당

목표로 삼았던 82년부터 있어온 군산횟집이 코로나 시기를 넘기지 못하고 폐업했다는 것은 도착해서 알았다. 차선책으로 급하게 다른 횟집을 찾았는데 시간이 늦어 많은 선택지는 없었다. 첫 여행인 만큼 미디어의 선택도 외면하지 않기로 한다. 그렇게 맛있는 녀석들에 방송되었다는 새만금 횟집에 들렀는데 오징어-오이 무침과 매운탕이 어마어마하게 맛나서 밥을 한그릇 다 먹었다. 회는 광어와 방어가 나왔다. 방어를 너무 좋아하는 나는 그저 맛있는 밤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빵집으로 군산시 중앙로 1가에 위치한 이성당도 들렀다. 중앙로 1가라는 주소명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도 난다. 3-4대를 꾸준하게 사업을 유지하며 그 자리를 지키는 일은 여러 노력과 희생을 필요로 한다. 대략 저녁 8시 가까워 도착했더니 줄은 없었고 그만큼 빵도 없었다. 그래도 단팥빵 만큼은 밤늦은 시간까지 계속 제조 중이라 두개를 사서 계산대에 섰는데 못난이라 팔지 못한다는 야채빵을 하나 끼워 주셨다. 결과적으로 운이 좋게도 본점에서 야채빵과 단팥빵을 줄도 서지 않고 모두 맛봤다. 단팥빵은 긴자보다 맛있었다. 야채빵도 여태 먹은 야채빵 중 가장 맛있었고. 다음에도 들러서 둘 다 사고 싶을 정도이다. 인근에 위치한 근대 건물의 야경도 보았다. 고즈넉했지만 슬픈 역사도 분명 있을 터.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변산반도로 가야해서 짧게 둘러볼 수 밖에 없음이 못내 아쉬웠다. 이 코스 그대로 다시 여행하고 싶은 첫날이었다.

변산반도에서 고창으로

말 많던 새만금은 이미 밤이 깊어져 보았으나 보지 못한채 변산반도로 넘어와 체크인을 했다. 고급스럽지는 않으나 넓고 깨끗했고 오션뷰도 좋았다. 다음날 아침은 채석강을 걷는 것으로 시작했다. 내 나라의 바다지만 익숙한 바다 풍경과 무척 다른 느낌의 목가적인 서해 바다 아침을 보았다. 평지가 넓고 파도가 온화하고 동시에 국립공원 산세까지 있어 근경부터 원경까지 조화롭게 몹시 아름다웠다. 날씨까지 온화하고 바람도 습하지 않아 하와이 모습과 오버랩이 종종 되었다.

특히 모항의 갯벌 풍경은 잊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이어 방문한 부안에 위치한 슬지제빵소도 좋았다. 로컬 브랜딩이 제대로 성공한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우유 생크림, 팥, 밤, 그리고 빵이 뭐하나 뺄 수 없을 만큼 완성도 높았다.

슬지제빵소를 가는 길에 본 곰소항에도 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었지만 창밖의 거대한 규모에 곰소항이 우리나라 젓갈로 가장 유명한 산지 중 한곳인 것을 절로 알게 되었다. 삼대젓갈직판장에 들러 사고 싶었던 멍게젓을 구매했다. 곰소항에는 젓갈 집이 너무 많지만 이왕이면 전통 깊은 곳에서, 특히 젓갈에 우리나라 천일염을 사용하는 곳에서 사고 싶었다. 소금과 액젓을 맛을 보고 살 수 있었는데 단맛, 감칠맛 모두 좋았기에 결국 젓갈에 양념 재료까지 두손 가득 사서 나섰다.

고창 풍천 장어

드디어 이 여행의 목적지인 고창 풍천 장어 길목에 도착했다. 풍천터널은 있었지만 풍천은 지명이 아니라 이 지역 바람과 물이 유난히 장어를 맛나게 한다는 의미에서 기원했다 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장어가 다르긴 많이 달랐다. 우선 엄청나게 통통했고 쫄깃했고 고소했다. 특히 장어 파는 부부는 오픈 테라스에서 먹으며 병바위를 조망할 수 있는 것이 압권이었다. 엄청난 규모에 손님도 많았는데 꼼꼼하게 챙겨주시던 사장님도 참 좋았다. 우린 다음에도 또 이곳으로 방문하게 될 것 같다.

먼길이었지만 장어 먹으러, 그것 외에도 보물 같은 이야기가 많은 서해를 보러 종종 가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