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롬톤, 테슬라, 라이카를 데려간 제주 서부 일주일

제주는 코로나 시대에 들어와 중국에서 온 관광객이 많이 줄어든 대신 도시를 떠나고 싶고 이국적 정취를 느끼고픈 한국인들이 어느때보다 많이 찾는 여행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원도로 이사온지 채 몇년이 되지 않아서 제주도를 여행지로 떠올리기는 쉽지 않았던 지난 몇년이다. 해가 바뀌었고 휴가는 써야했다. 구정 연휴 쯔음 1주일 조금 넘게 쉴 수 있게 되었고 부부톤을 장만한 터라 긴 휴가에만 할 수 있는 내 차 갖고 제주도 가기를 결정했다. 그리고 최근에 갖게 된 라이카 D-lux를 챙겼다.

마지막 제주도를 찾은 이후로 세상엔 에어비엔비가 생겼고,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이 핫해졌고 전기 자동차가 생겼다. 우리는 에어비엔비로 제주 서부쪽 펜션을 예약하고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으로 여행 일정을 대략 설계하고 촬영 장비를 챙겼으며 테슬라에 브롬톤 두개와 대략의 짐을 싸넣고 새벽에 강원도 원주를 출발해서 논산에서 수퍼차징을 하고 완도항에서 배를 타고 제주항에 들어가서 제주에서 수퍼차징을 하고 대평리에 위치한 숙소에 밤 늦게 체크인을 했다.

다음날 아침, 숙소를 나섰더니 수선화와 유채꽃이 길가에 펴 있고 파와 배추들이 파랗고 가로수는 풍성한 곡선미를 자랑하고 있다. 저 멀리 한라산에는 눈이 쌓여 있지만 길에는 초록빛 식물들이 가득하니 그것만으로도 긴긴 겨울을 벗어난 듯하다. 대평리 숙소를 나서 박수귀정쪽으로 내려가 올래 8길을 따라 가볍게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제주는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눈이 오는 아열대 지대라더니 날씨가 정신이 없다. 분명 햇살이 쨍쨍한데 바람이 차다. 때문에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 있긴 하지만 모든 라이딩이 이상하게 힘들다. 다운힐도 업힐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이국적인 나무와 까만 돌, 육지에서는 볼 수도 없었던 해안선을 따라 길게 펼쳐진 주상절리, 바다를 향해 다양한 느낌으로 내려오는 빛, 눈이 오다가 햇살이 가득하다가를 반복하는 다채로운 날씨 덕분에 7일간 들고 다닌 카메라에는 수많은 사진이 찍혔다.

1:1에 놓고 50mm로 주로 찍었고 가끔은 9:16으로 놓고 20mm 내외 광각으로도 찍었다. 다양하게 쉽게 찍을 수 있는 것도 편한데 과장 없이 암부를 아름답게 그리는 결과물에 생각보다 놀랐다. 그 이후로는 더 구도에 집중했고 raw 파일을 굳이 develop하지 않아도 되겠단 생각이 들어 기쁘게 찍기만 했다.

송악산에서 바라본 풍경

한참의 시간이 지났고 돌아와 고르고 골라도 내게는 너무 아름다웠고 소중했던 풍경이었기에 다소 많은 사진을 일일히 정리했다. 제주에 대해 더 알고 싶어 몇몇 책을 사서 돌아왔고 유흥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주편을 읽으면서 제주의 역사와 환경에 대해 꽤 많은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접근성이 좋다면 매 계절 가고 싶지만 그리고 분명 제주는 봄도, 가을도, 여름도 아름답겠지만 여의치 않은 게 현재의 나다. 그래도 머무는 내내 날씨가 좋았다. 눈이 내리고 바람이 거칠게 불고 억새가 끝없이 펼쳐지는 가운데 펼쳐지는 2월 제주 풍경에는 물먹은 빛이 가득했고 기대보다도 정교했던 아름다움은 반전으로 다가올 정도였다. 감사했다.

건축에 대해 많은 관심이 생기고 투자 자본이 커지면서 과거보다 괜찮은 형태의 공간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는 것도 관광객 입장에서는 즐거웠다. 추운 바람을 피해 들어간 장소에서 맡은 버터향, 커피향, 눈이 녹아 떨어지던 사이로 맡던 아침 내음은 더 없는 추억이다.

중산간지역 귤밭에는 오렌지 빛 귤들이 가득했고 까만 돌담벽 사이 동백꽃과 선인장 꽃은 유난히도 선명한 붉은 보라빛이었다. 바다를 향해 가는 길 우편에 오름이 오름을 부르고 또 오름을 부르더니 그 뒤에는 한라산이 구름에 덮였다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오름은 그 자체로도 신비로웠지만 올라서 내려다 보는 제주의 섬과 특유의 바다 빛이 섞인 풍경은… 카메라를 들고 제주에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동할만한 풍광적 소재를 선물한다.

빛과 색이 완전히 기대 이상이었던 제주였다. 또 가도 이만큼 좋을까 싶을 만큼 인상적이었던 2월의 제주 서부 풍경을 사진으로 소중히 추억할 것 같다. 모든 사진에 아무런 보정을 하지 않고 포스팅 하는 건 보정을 알게된 이후로는 처음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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