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냅; 긴 장마 속 일요일 원주

가히 코로나가 잊혀질만한 물난리다. 질펀하고 미끄럽고 위험하다. 이맘때 산으로, 강으로 가던 피서 조차 호사가 되었다. 이쯤해서 그쳐야 할텐데 뉴스를 켜면 연일 안타까운 소식의 연속이다. 우리집 장손이 휘카스 움벨라타는 이번 장마가 또 힘들었는지 응애가 껴 또 노란잎을 낸다. 열렸던 토마토는 익지도 못했고, 루꼴라는 썩어간다. 베란다를 싹 다 정리하고 휘카스 움벨라타는 잎을 다 떼버린 다음 퐁퐁 섞은 물로 스프레이, 창가에 뒀다. 금요일에 전공의 파업으로 당직을 오랜만에 섰다. 조용히 지나갈줄 알았으나 나름 화려한 밤을 보낸 바람에 토요일에는 뭘 했는지 기억도 안난다.

반면, 일요일 아침이 되자 뭐라도 하고 싶어진다. 똑 떨어진 원두를 사러 구도심 단골집에 가고 싶었다. 창밖 비 가득한 모양새를 새삼스럽게 바라보며 몇번을 망설였다. 안전벨트 단단히 매고 원주 단골 로스터리인 코헨에 들렀다. 새로운 가구가 몇개 보이고 테이블도 흰색 멜라민 목재 소재로 바뀌어 있었다. 에스프레소 한잔 하고 원두 두봉 산 뒤 만족스럽게 나섰다. 비가 좀 잠잠하여 걸을만하다. 다닥다닥 옹좁은 길 사이로 펼쳐진 옛스런 풍경들을 지나 자유시장 강릉집에 들러 순대국을 포장할까 했는데 오늘 안나오셨다. 그래서 인근에 위치한 신발 가게에 들어갔다. VANS가 세일도 하고 색도 예뻐 세개를 골라 구매했다. 장마에 어울리는 건 순대국만이 아니다. 원주 가장 핫한 집중 하나인 까치둥지에 들러 문 열림과 동시에 입장, 10여분 기다려 2인분의 알탕을 포장해 나왔다. 그 동안 깨먹은 게 많아 이소 도예에 들러 백자 그릇 몇개 살려 했으나 너무 일찍이었나보다. 엇갈렸다. 할리 데이비슨에서 수천만원 한다는 오토바이 구경이라도 해볼까 해서 들렀더니 또 문을 닫았다. 일요일 원주 순시가 원할하지 않다. 빗속에 시들해가는 베란다 바질을 정리할 때이다. 토마토-바질 얼려 아이스크림 만들고자 다이소에서 실리콘 주물을 샀다. 오는 길에 대만 레스토랑 리지에 들러 우육탕면 먹고 들어올까 했더니 또 문을 닫았다. 일요일은 원주에 놀러 온다면 피해야 하는 요일 중 하나가 맞다. 집에서 곱게 알탕 데워먹고 차돌박이 구워먹고 복숭아 갈아 먹고 토마토 얼려먹고, 요약하면 계속 먹으며 사이코지만 괜찮아를 10회까지 정주행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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