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생각해서 절약하고 저축해야 한다는데 나의 구매력은 쉽게 잠재워지지 않는다. 작년 가을 베스파 매장에 들어간 나는 빨간색 베스파 프리마베라, 그것도 온통 빨간 레드 프로덕트 베스파 프리마베라를 구입했다.
베스파 프리마베라 구입에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첫째, 우리 병원은 매주 1회 요일제를 운영한다. 차를 가지고 출근할 수 없는 날인데 자전거로 가고 싶어도 시골이라 인도가 없는 구간이 너무 많아 제약이 있다. 둘째, 시골이라 대중 교통 타기 힘들다. 셋째, 택시로 다니기엔 멀어서 안 쾌적하다. 넷째, 하필 그 운영하는 요일이 당직일 때가 많다.
베스파를 타고 출퇴근 하겠다는 게 이유라고 하지만 사실 일일 주차 계산해서 다른 주차장에 주차해도 되긴 하니 지금 생각하면 다 그냥 한 생각이다. 그냥 스쿠터가 갖고 싶었다. 자전거를 타면서 바람을 가르는 즐거움을 알아버렸다. 그런데 포장이 안된 구간이 많고 매번 차로 딜리버리 하는 것이 아쉬웠다. 그리고 주차장이 없거나 좁은 길에 다니기에 테슬라 모델 S가 상당히 힘든 차종인 것도 이유긴 하다.
왜 많은 대체제 중에 베스파 프리마베라였을까. 베스파 300cc는 출력에서 유리하지만 2종 면허가 필요하고 기어 변동을 할 수 있어야하는데 나는 면허를 따는 게 부담스러웠다. 그럴 시간도 정신적 여유도 없었다. 이런 경우 선택지는 스쿠터 125cc 뿐이다. 오르막에서 달리지를 못한다는 스쿠터 125cc이지만 도로 한복판에서도 이유 없이 서고 이유 없이 지나치게 느리게 다니는 차량들 많은 지역에 살아보니 민폐만 아니면 된다 싶었다.
스쿠터 125cc 중에는 혼다와 베스파가 대표적이다. 구입 당시에 혼다는 크게 관심이 없었고 베스파는 아이코닉한 디자인이니까 매장에 구경 가게 되었다.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면 혼다 몽키나 커브도 비교를 하긴 했을 것 같다.
베스파 매장에 구경 갈 때만 해도 흰색이 관심 있었는데 매장에서 한번 눈길이 가는 순간 무조건 저 색이어야 한다는 건 빨간색이었다. 아마도 레드 프로덕트 에디션이어서 휠과 시트가 모두 빨간색이었던 게 내 눈에 쏙 들어온 이유인 것 같다. 색을 보는 관점은 모두 다르고 주관적이라 이건 정말 설명할 수가 없다.
탁송 온 이후에 연수를 하고 운행을 하고 비록 자주는 못타고 있지만 늘 타고 싶은 마음은 한 켠에 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나 내 기준에는 충분히 빠른 나의 스쿠터. 한 여름에 달려도 덥지 않았다. 인근에 차량이 한적하고 경치가 아름다운 국도가 정말 많기에 예쁜 옷을 차려 입고 가을 나들이를 가고 싶었으나 정신 없이 흘러버린 시간 때문에 이번 가을 스쿠터 여행은 놓쳤다.
젬스가 헌터 커브를 예약했다. 두 대가 되면 같이 가고 싶은 곳이 많다. 내 베스파는 거의 노상 주차장에서 자고 있지만 운송 매체로서의 기능은 최초부터 핑계에 불가했던 구매였기 때문에 볼 때마다 잘 산 악세서리를 보는 마냥 설레인다. 부디 앞으로 좋은 날씨가 많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