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회로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관념으로 학습된 것으로 구성 된다. 태어난 배경과 사는 곳을 벗어나는 사고를 하는 것은 그래서, 깊은 사유와 깨어있기 위한 노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힘들다. 나이란 더 웃겨서 관념으로 구성된 자신의 회로를 정당화하는 갖은 방법을 갖추게 하기 마련이다.
호프지런의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는 휴가때 서촌 그 책방에서 읽다 말고 사왔다. 호프지런은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서 지구진화와 역학센터 교수로 재직중에 있다. 번역이 좋아서 읽기가 더 좋았다. 작년 9월경 우리나라에 출간된 책이고 크레마로도 읽을 수 있다. 책에는 이미 어디선가 들어 친숙한 이야기도 많았지만 이 책에는 환경에 관한 숫자가 특히 많다. 그래서 쉽게 이입이 되었고 외면하지 않고 생각하고 싶었다.
나는 자녀가 없다. 후손이 없는 생을 살고 있기 때문에 내가 살아있는 순간이라도 별탈없이 지나간다면 지구가 어떻게 되는 것 보다도 내가 편한게 우선한다. 게다가 나는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을 성공이라 생각하는 사회적 배경에서 평생을 살았고 지금도 더 많이 소비하고 싶어 버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작가는 이런 나에게 후손을 차지하고서라도 그 관념이 지구를 살고 있는 현재의 다수에게는 매우 불공정하고 정의롭지 않은 태도임을 말하고 있다. 또한 우매하게도 지구에 함께 살고 있는 수많은 생명체에게 매우 잔인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 채 자신의 터전을 망가뜨리는 유일한 생명체로 살고 있지 않냐고 묻고 있다.
좀 덜 쓰고 좀 덜 갖고 덜 먹고 좀 더 걸어보자고. 좀 덜 데우고 좀 덜 쾌적한들 어떠냐고. 맞는 말이다. 내가 이토록 사랑하고 있는 삶을 나보다 수없이 촘촘하게 더 많고 새로운 사람들이 평화롭게 이어가길 바란다면 지금 범람하는 과잉의 시대에 젖어들게 아니라 지성을 갖고 불편한 시각을 견지하며 먼저 이행할 필요가 있다. 덜 소비하고 더 나누라. 작가의 절박한 이야기에서 ‘나의 태도’를 생각했다.